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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무엇을 바꾸고 싶은가"
사회문제 해결하는 '돕는AI' 활용법

2025.09.04

인공지능(AI)의 진화는 더 이상 기술 산업 내부의 문제가 아니다. 의료·심리·교육·환경 등 사회 전 영역에서 AI는 사람을 대신하기보다 사람을 돕는 ‘동반자’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자동화 도구가 아니라 사회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돕는기술’ ‘돕는AI’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커지는 요구와도 맞물린다. 기후위기, 고령화, 정신건강 악화 등 복잡한 문제들은 하나의 기관이나 전문가 집단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주요국에서도 AI로 인간의 전문성을 보완하고, 방대한 데이터 분석으로 문제해결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른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무엇을 만들까’가 아니라 ‘무엇을 바꿀까’라는 질문으로 무게 중심이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카카오의 공익재단 카카오임팩트는 지난달 25~2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2회 사회적가치 페스타에서 ‘돕는 AI 컨퍼런스’를 통해 ‘AI 네이티브 소셜 임팩트(AI-Native Social Impact)’을 중심으로 논의의 장을 마련했다. AI 네이티브 소셜 임팩트는 첨단기술 활용이 제한적이던 보건복지·환경 등 공익 분야에 AI 기술을 활용해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서는 현상을 말한다.

 

이틀간 진행된 전문가 세션에서 공통적으로 나온 이야기는 변화의 방향이다. 기술의 방향이 성능 경쟁에서 사회적 가치 창출로 옮겨가는 지금, 이른바 ‘돕는AI’는 의료 현장의 의사 판단을 돕고, 전문 심리상담을 학습하고, 유기동물과 새 보호자를 연결하면서 돌고래 생태계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 모두 국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돕는AI 생태계’가 확장되려면 사회적 상상력과 정책적 투자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러스트=문유비

 

돕는AI는 단기적으로는 전문가의 보조자로, 장기적으로는 공공 인프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AI를 어떻게 설계하고, 어떤 생태계를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향후 10년간 사회문제 해결의 속도와 범위가 결정된다는 분석이다. 류석영 카카오임팩트 이사장은 “작은 기술이라도 선하게 쓰이면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확신으로 출발한 재단의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실제 현장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며 “이제 중요한 건 다음 세대를 위해 이 기술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구에서 동료로

 

“이제 중요한 건 어떻게 만들까가 아니라, 무엇을 바꿀까입니다.”

 

김주호 KAIST 전산학부 부교수는 AI 활용 개념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생성형AI 모델이 아무리 고도화되고 사람 같은 에이전트가 나온다고 해도 AI에 결여된 ‘스스로 질문하는 능력’은 인간의 영역이며, 이러한 질문이 AI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시작점이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문제의식과 질문을 가진 사람이 누군가를 돕는 기술을 만들 수 있고, AI는 동료로서 그 역할을 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컨퍼런스의 ‘청진기 대신, AI를 손에 쥔 의사들’ 세션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공통된 메시지는 명확하다. AI는 전문가의 역할을 대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문가들이 더 많은 사람을, 더 깊이 도울 수 있도록 확장하는 동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의료 현장의 의사는 AI로 환자를 빠르게 파악하고, 심리 상담 전문가는 내담자와 깊이 있는 대화로 가는 가장 빠른 경로를 찾고, 학교 현장의 교사는 교육의 질을 극대화한다.

 

기술의 임계치는 이미 낮아졌다. 비영리 AI연구기관인 METR에 따르면, AI가 수행할 수 있는 작업의 길이는 7개월마다 2배씩 상승하고 있다. 최근에 인간이 직접 수행했을 때 1시간이 넘게 걸리는 일을 AI가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자동으로 할 수 있게 됐다. 이제 남은 것은 문제를 정의하는 질문과, 사람과 AI를 잇는 현장 설계다.

 

 

지난달 25일 열린 '돕는 AI 컨퍼런스'의 ‘청진기 대신, AI를 손에 쥔 의사들’ 세션에 참여한 정신의학과 전문의 정혜신(오른쪽) 박사와 허준녕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 [사진 카카오임팩트]

 

이른바 ‘돕는AI’가 작동하는 대표적인 현장은 의료 분야다. 카로티드AI(Carotid.AI)는 스마트폰으로 뇌졸중 위험을 자가 진단할 수 있는 도구다. 카로티드AI를 만든 건 허준녕 연세대 의과대학 신경과학교실 조교수다. 혁신은 질문에서 시작됐다. 뇌졸중은 치명률 3위일 정도로 흔하지만 굉장히 위험한 질병이다. 혈관이 막혀 뇌경색이 오면 1분에 200만개의 뇌세포가 죽어 나간다. 뇌경색을 일으키는 경동맥 협착은 무증상이라 스스로 진단할 방법이 없다. 허준녕 교수는 “검진센터에서 CT나 MRI, 초음파로 살펴야 하는 데 비용이 비싸고 번거롭기 때문에 검진을 미루다가 결국 뇌경색을 맞는다”며 “간단하고 저렴하게 경동맥 위험을 확인할 수 있는 기술, 즉 ‘혈관이 좁아지면서 발생하는 이상잡음을 스마트폰 마이크와 AI 기술로 판단할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에서 진단 도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스마트폰으로 경동맥이 지나는 목에 대고 소리를 녹음했고, 협착 환자의 녹음 파일과 비교했다. 확연히 구분됐다. 임상연구를 위해 총 85명의 데이터를 모아 분석 모델을 만들어 검증했다. 그 결과 정상과 협착 환자를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해당 연구는 지난해 국제의학저널에 게재되며 검증도 거쳤다. 허 교수는 “가까운 미래에 급성 치료에 AI 기술의 활용도가 매우 높아질 것”이라며 “응급실에서 의사들이 환자를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기까지 수많은 확인을 거쳐야 하는데 AI와 함께하면 그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심리상담 분야에서도 AI는 전문가의 동료로 위상이 높아지는 중이다. 정신의학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카카오와 협력해 심리상담 AI(가칭 ‘클레어AI’)를 개발 중이다. 클레어AI는 사회적 참사 현장에서 체득한 상담 기법인 치유의 암묵지(implicit knowledge)를 알고리즘이 학습할 수 있는 단위로 쪼개어 기록하고 체계화하는 실험이다. 정혜신 박사는 상담을 ‘말로 하는 수술’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수술이라는 것은 정확한 목표가 있는 행위”라며 “상담 역시 정확한 목표에 최단 시간, 최단 경로로 닿는 질문과 관계 맺기를 성공해야 내담자를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상담할 때 나오는 모든 반응에는 이유와 논리가 있는데, 이를 체계화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뛰는 일”이라며 “정신분석 훈련을 받은 AI 모델이 나온다면 응급상황에서 심폐소생술하듯 심리상담이 시급한 사람들에게 빠르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류석영 카카오임팩트 이사장이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2회 사회적가치 페스타’에서 ‘돕는 AI 컨퍼런스’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사진 카카오임팩트]

 

 

사회적 상상력을 확장하다

 

생성형 AI의 등장은 개발의 문턱을 확 낮췄다. 전문 개발자만이 아니라 현장의 비영리활동가부터 사회복지사, 간병인, 보호자까지도 손쉽게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서비스를 실험할 수 있다.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고민을 AI가 덜어줬다면, ‘무엇을 바꿀지’에 대해 질문에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카카오임팩트가 ‘질문과 기술이 만나면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카카오임팩트는 지난 1년간 사회혁신가와 IT 전문가를 연결하는 ‘테크포임팩트’로 48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지난 26일 진행된 돕는AI 컨퍼런스 현장에서도 테크포임팩트랩(LAB)에서 활동하는 개발자와 사회혁신가들이 무대에 올랐다.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보호하는 드론비전 기술을 개발하는 한서우 B GARAGE 엔지니어는 “기술 솔루션 만드는 입장에서 일반기술과 돕는기술 만드는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며 “다만 사회문제 해결 기술은 데이터 수집이 어렵다거나 인터넷이 없는 환경에서 작동해야 하는 등 기술적인 난도가 높기 때문에 무엇을 우선 해결해야 할지 훨씬 더 고민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유기동물 입양과 파양 문제를 기술로 해결하는 이환희 포인핸드 대표는 “막연히 AI를 도입하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며 “어떤 변화를 만들지, 이게 기술이 필요한지, 제도가 개선돼야 하는지,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지 등을 생각하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문정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이 컨퍼런스 이틀차인 지난달 26일 '돕는 AI와 돌봄' 세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카카오임팩트]

 

 

이처럼 AI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키가 될 수는 없다는 지적도 많다. 특히 돌봄 문제가 그렇다. 최문정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은 “돌봄은 자동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치매 환자에게 투약을 챙겨주고, 노인을 곁에서 돌보는 일을 로봇이 대신할 수 없지만, AI는 사람의 능력을 확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치매안심센터가 매일 수천명에게 발송하는 인지훈련 메시지를 AI가 전송·채점하면, 직원들은 그 시간에 환자 상담과 보호자 지원에 집중할 수 있다. 단순 업무를 걷어내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돌봄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김윤 트웰브랩스 CSO는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건강·정신·생활 전반을 세밀하게 맞추는 일”이라며 “치매 환자마다 증상과 맥락이 달라 일률적인 프로그램은 효과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때 AI가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지점은 바로 초개인화다. 생활 리듬에 맞춘 알림, 선호 활동에 맞춘 과제, 보호자에게 제공하는 대화 스크립트까지. 허담 이대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치매 환자들은 여러 질환을 복합적으로 안고 있는 경우가 많아 초개인화 서비스는 AI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돌봄을 받는 사람만큼이나 돌봄을 제공하는 보호자 역시 돌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서비스 개발도 필요하다”며 “돌봄의 목표는 본인의 역할을 하면서 스스로 기능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을 띄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돕는AI 생태계에 투자하라

 

돕는AI가 단발성 파일럿을 넘어서려면 좋은 의도만으로는 부족하다. 운영비와 유지보수 책임을 포함한 지속가능한 구조가 필요하다. 현장에서 증명된 솔루션을 다른 지역 혹은 기관으로 확산하는 힘은 기술이 아니라 생태계에서 나온다.

 

영국의 벤처캐피털 베스널그린벤처스의 폴 밀러 대표. 그는 "기술기반 사회혁신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생태계가 필요하고, 그 생태계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투자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사진 카카오임팩트]

 

이번 컨퍼런스의 마지막 세션 ‘기술로 세상을 바꾸는 무브먼트에 투자하기’의 무대에 선 폴 밀러 베스널그린벤처스(BGV) 대표는 기술로 사회를 바꾸는 소위 ‘테크포굿’(Tech for good) 기업에 투자한다. 현재 5000만 달러(약 700억원) 규모의 임팩트 벤처펀드 운용하면서 돕는기술을 보유한 기업 141개에 투자했다. 밀러 대표는 “기술의 발전으로 수만 달러로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게 됐고, 덕분에 투자자들도 작은 투자로 여러 기술 스타트업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며 “영국의 ‘닥터닥터(DrDoctor)’는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NHS)를 활용해 환자 예약, 알림, 원격 모니터링을 지원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인데, 실제 1만파운드 투자로 정부 예산 1억 파운드를 절감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의 사회적기업 ‘페어폰(Fairphone)’ 사례도 소개했다. 바스 반 아벨 대표는 10여 년 전 스마트폰이 보급될 당시 제조 공급망에 약 40가지 광물이 포함돼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광산업 공급망의 노동 인권 캠페인을 진행하는 동시에 사용자가 직접 부품을 교체하며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모듈형 스마트폰을 개발했다. 현재 페어폰의 연간 수익은 5000만 달러(약 700억원), 삼성과 애플 등 글로벌 제조사들도 페어폰 인증을 받은 광산에서 생산된 공정무역 광물을 사용하고 있다. 결국 임팩트 스타트업은 성장률과 사회적 효과가 맞물릴 때 비로소 생존력이 생긴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이날 대담에 함께한 제현주 인비저닝파트너스 대표도 “AI 돌봄, 고령화, 노동시장 변화 같은 영역은 사회적 필요와 시장 기회가 동시에 커지고 있다”며 “임팩트 투자는 자선이 아니라 고성장·고임팩트의 교차점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육심나 카카오임팩트 사무총장은 “사회를 바꾸는 기술을 만들어보자고 재단에서 처음 이야기를 꺼냈을 때 ‘과연 몇 명이나 동참할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불과 1년 만에 435명의 IT전문가가 재단의 돕는기술 개발 프로젝트에 나섰다”며 “이러한 변화의 원동력은 기술 자체보다 ‘누군가를 돕고싶다는’ 마음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이번 '돕는AI'에 대한 논의가 담론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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